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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8월 14일
붕괴 직전인 38년 "스카이아파트" 현장방문 상담을 다녀와서
<스카이 아파트 외부 모습> 지반침하, 누수, 건물균열, 골조부식 등으로 인해 지지대로 붕괴를 막고 철망을 둘러 낙석을 받아내고 있는 서울 정릉의 스카이 아파트. 1969년에 지어져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스카이아파트는 3년 전 SH 공사의 안전진단에서 재난위험시설인 D등급을 받았다. 붕괴위험에 직면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북구와 서울시는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또한 시와 구청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제 31조에 따라 입주민들이 보수와 보강 등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카이아파트의 경우, 보수와 보강에 대해 업체에 요청해도 노화의 심화로 공사자체가 불가할 뿐만 아니라 재건축은 자연경관 지구로 묶여 있어 시장성을 확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6동 스카이 아파트 내부 모습>
스카이아파트에는 영세한 원주민들과 전세 천만 원~이천 만원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단신가구, 수급권자인 세입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마땅한 이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노후 정도가 제일 심한 6동의 경우 붕괴위험으로 인해 40가구 중 대부분의 가구가 이사를 가고 11가구가 남아 생활하고 있었다.
성북나눔의집과 성북지역자활센터, 성북주거복지센터, 민주노동당 성북구위원회 등 4개 단체는 지난 달 28일, 스카이아파트 세입자들의 당면한 문제와 욕구해결을 위해 현장방문 상담을 실시하였다. 아울러 긴급의료비나 교육비, 집수리 지원과 함께 임대아파트 관련 융자제도나 파산면책 제도 등의 정보도 제공하였다.
"희망이 보여요. (빚)정리를 해서 이 무거운 짐을 벗어야죠." 5동에 살고 있는 함소진(가명,51)씨는 민주노동당 박창원 위원장과 파산 관련 상담을 받고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함씨는 예전에 가내수공업의 사장님이었다. 카드로 돌려 막기를 하면서 근근이 버텼던 함씨였지만 정부의 카드 규제로 결국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함씨는 이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함씨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을 내고 살 수 있는 10평 내외의 스카이 아파트로 이사 왔다. 하지만 함씨는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잔 날이 거의 없었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 일을 보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화장실과 누수로 인해 부엌과 방에 핀 곰팡이 냄새로 숨쉬기가 쉽지 않은 집에 살게 되면서 하나 뿐인 아들이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함씨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함씨는 이제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한 후 단계적으로 빚을 갚아 나가면서 임대아파트의 전세 융자금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관련 상담 중인 이복희 씨> "65세의 할머니가 파출부 일을 하면서 집 나간 아들의 11살 손자를 돌보고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아프셔서 집에 계시구요. 동사무소에 가서 국민기초 수급자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해 드렸죠. 할머니는 당신의 나이가 젊은데 신청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시더군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가치를 말해줍니다”라는 여느 아파트의 광고 문구는 틀렸다. 인간의 가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존엄하기 때문이다. 스카이아파트 세입자들에게는 건물이 무너져 압사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도 하늘의 이슬을 피할 곳이 없어지는 공포가 더 크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안전한 주거 환경 속에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서울시와 성북구의 성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07년 08월 03일
- 논술교사로서의 첫 날 - 방문 논술교사로서 수업 첫 날이었다. 긴장 탓인지, 잘해보고 싶은 욕심 탓인지 수업 두 시간 전부터 아이네 집주변을 맴돌았다. 이번에 내가 만나게 될 아이는 중학교 3학년 세나(가명)였다. 장애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 둘의 궁합이 잘 맞기를 바랐다. 수업 시작 10분 전,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머리 좋고, 옷차림 좋고, 얼굴표정 완벽하고. 호흡 가다듬고 세나 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한번..., 두 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잘못 안 것인가 싶어 수첩에서 집주소와 방문 날짜, 시간을 확인하였다. 맞았다. 다시 세 번째.......... 집 안에서 분명치 못한 발음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른 안 계시니깐 ~ 어~ 다음에 오세요." 세나가 집에 있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고 했다. 세나 네 엄마는 수업이 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외출한 상태였다. 첫날부터 되돌아 갈 수 없었다. 세나, 세나 엄마, 세나와의 핸드폰 통화를 통해서야 간신히 그 집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세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맘씨 푸근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통통했다. 첫 시간이라 그런지 우린 서로에게 관심이 많았다. "텍스트는 무엇인가"라는 수업을 하는데 어느 길로 가도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만났다. 더욱이 세나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나도 그랬었다라고 하니 우리는 금방 공감대가 생겼다.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세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막혀있던 봇물이 터지듯이 하였다. 8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3살에 장애가 발견된 세나. 8살까지는 까치발로 서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더 좋아지라고 했던 척추 수술로 상태가 오히려 나빠져 다시는 서지 못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골반을 드러내기까지 하여 다리는 근육과 신경으로만 몸통에 연결되어 있다. 장애인 학교를 다니다 비 장애인 학교로 전학 간 세나는 비 장애 아이들이 장난치다 휠체어를 밀칠까봐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또한 휠체어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찾다보니 통학하는 데만도 하루 세 시간 이상이 필요했다. 세나가 학교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점심시간에만 간신히 화장실에 갈 수 있었는데 세나는 참다가 방광이 터질 것 같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세나는 평소에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이는 움직임도 없는 세나에게 변비의 원인이 되게 했다. "엄마는 제게 늘 말씀하세요. ‘너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남보다도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유명한 작가가 돼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들이 저를 얕보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맘처럼 잘 되지 않아요." 비장애인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세나가 안쓰러웠다. ‘그렇지 않다, 너는 너로 소중하다'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세나가 만나는 현실을 가정해 보았을 때는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도 희아*언니나 지선**언니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 장애인으로서 느끼는 세상에 대해서요. 사람들이 제 글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세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논술과외를 받는 것이었다. 그 희망을 잘 꽃 피울 수 있도록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 할 텐데, 양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서 장기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장애 등급에 대해 물어 보았다. "1등급이요." "잘 됐네. 그나마 의료비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어서." 순간 세나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그렇죠'라고 했다. "어중간하게 장애등급을 받으면 혜택도 별로 없거든. 앞으로 골반수술이나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예정된 수업 시간의 두 배를 하고선, 집에 오는데 계속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수업 중에 한 말이 맘에 걸렸다. 전직 사회복지사 랍시고 아는 척하며 한 말이 ‘장애1등급이라서 다행이다'라는 말이었다. 그 애와 나의 거리를 확인시켜주는 사무적인 말이었다. 더군다나 세나가 겪는 장애의 고통이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 말인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차라리 혜택을 안 받아도 좋으니 장애등급 2,3등급인 것이 낫다고 세나가 항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의도치 않게 세나가 상처받았을 것 같아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집에 오자마자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1등급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혜택을 물어 보았다. "저소득층이나 국민기초 수급자인 경우에만 10~20만원 사이의 생계 보조비가 나가. 그렇지 않다면 건강보험료, 전기세,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곳 등의 할인이 있지." 친구의 대답에 세나에게 더욱 미안해졌다. 용서해라, 세나야!
---------------------------------------------- * 네 손가락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로 다시 태어났다. 자서전인 <희아의 일기>가 있다. **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고 11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재활상담가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중이다. 자서전인 <지선아, 사랑해>가 있다.
2007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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